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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 열차를 타라! 편도로!

국내 영화 업계에 쓰이는 용어 중에 '다찌마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일본 가부키 용어 '다찌마와리(立ち回り, たちまわり)'에서 차용한 것입니다. 주인공이 적들을 한 바퀴 빙 둘러보며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방법입니다. 영화에서는 카메라가 적들의 시점에서 주인공을 보며 도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기법은 대개 일본의 사무라이 영화, 한국에서는 조폭 영화에 자주 쓰입니다. 간단히 말해 일 대 다수로 싸우는 연출을 다찌마와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류승완 감독은 이 용어로 캐릭터에게 이름을 지어줍니다. 그리고 6, 70년대 연출과 대사, 의상, 포스터 그리고 후시녹음까지 완전한 70년대 복고풍 스타일로 영화를 찍어 2000년 12월에 인터넷으로 '다찌마와 Lee'란 제목으로 공개합니다. 길거리에서 여성을 희롱하는 불의를 발견한 상남자 '다찌마와 Lee'가 무력으로 참교육시키는 35분짜리 단편 영화는, 8년 후 독립운동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쾌남 다찌마와 리로 바뀌어 2008년에 '다찌마와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 열차를 타라!'라는 제목으로 개봉했습니다.

통성명이 필요 없는 남자, 다찌마와 리!

중국 상하이 기차역 앞, 일본 옷을 입은 양아치 여럿이 한 조선 여성을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그때, 큰 소리로 일갈하며 그들을 꾸짖는 다찌마와 리. 일대 다수를 상대로 시끄럽고 야단스러운 한판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다찌마와 리의 승리로 끝나는데... 알고 보니 비밀 독립군 상해 지부였습니다. 다찌마와 리의 실력을 시험하기 위한 일종의 연극이었죠. 다찌마와 리가 맡게 될 임무는 독립군자금을 모으고 있는 요원들의 명단이 숨겨진 18K 황금불상을 회수하고 배신자를 잡아야 합니다. 황금 불상을 노리는 일본군과 만주 마적떼들이 도처 어디에나 숨어 있습니다.

웃으세요, 웃으시면 됩니다

이 영화는 노림새가 분명합니다. B급 코미디 영화 감성을 내세워 과장된 연극 톤의 대사, 후시녹음, 옛 영화의 오마주, 그리고 일대 다수 액션, 배경은 거창하게 중국, 미국, 스위스를 오가지만 실제 로케는 모두 국내이기 때문에, 압록강이나 두만강이라는 자막 뒤에 성수대교를 대놓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거기에 잔재미들도 숨어 있습니다. 요정 이름이 '설마'이거나, 카지노 이름이 'BADA STORY'라든가, 양치기가 영어로 'ram치기'가 된다든가, 스위스에 농협 지부가 있다는 등의 피식할 부분들이 꽤 있습니다. 영화의 모든 등장인물은 진지하지만, 관객을 웃기기 위해서 진지합니다.

영화의 또 다른 장점은 액션입니다. 전체적으로 코믹하게 구성하였지만 액션 자체는 상당한 수준입니다. 무술 감독이 우정 출연을 할 정도로 액션에 공을 들인 티가 납니다. 류승완 감독의 이전작 아라한 장풍대작전, 짝패를 보더라도 감독이 액션에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웃지 못할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B급 코미디 옛날 영화 감성이 모두에게 웃음 소재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문화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세대라면 그저 지루할 수밖에 없습니다. 웃음 포인트는 세월과 세대와 유행에 따라 달라지다 보니 그게 지금에도 유효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또한 웃기기 위한 장치로 간혹 지저분한 장면이 나와서 보는 이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결론

만약 짝패, 부당거래, 베테랑, 모가디슈, 밀수 등의 영화를 즐겁게 보셨다면, 그의 새로운 영화 컬렉션으로 이 영화를 추가해 보시기 바랍니다. 코믹하고 심각하지 않은 영화를 원하시는 분들께도 추천합니다.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독특한 B급 감성과 화려한 액션의 조화, 그리고 류승완 감독 특유의 스타일이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옛날 영화의 감성을 좋아하시거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액션 코미디를 찾으시는 분들에게 적극 추천합니다.